포르쉐는 슈퍼카를 양산할 수 있는 독일의 고급 스포츠카 제조 업체이며 폭스바겐 AG의 계열사이다. 페르디난트 포르쉐는 1899년 ‘야콥 로너’에 입사하여, 2년만에 수석엔지니어가 되었고,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세계 최초의 하이브리드 자동차인 로너-포르쉐를 공개했다. 1906년 다임러사의 자회사 오스트로-다임러에 입사하여 ‘프란츠 하인리히’ (Prinz Heinrich)를 제작했으며 1912년 개발한 공랭식 수평대향 4기통 엔진은 포르쉐와 폭스바겐 엔진의 시초이다. 1923년 다임러-벤츠로 자리를 옮겨 S, SS, SSK, SSKL 등의 모델을 제작하였다.
1931년 페르디난트 포르쉐는 아들과 사위 등과 함께 ‘Dr.Ing.h.c.F. Porsche AG’라는 엔지니어링 오피스를 설립했다. 설립초기에는 자사의 자동차를 제작/생산한 것이 아니라, 아우토 우니온, 메르세데스 벤츠 등 브랜드들의 자동자 개발과 자문업무를 수행했다. 1934년, 페르디난트 포르쉐는 아돌프 히틀러의 지시에 따라 국민차 개발 프로젝트에 핵심으로 참여하여 ‘비틀’을 제작했으며 1939년 포르쉐 브랜드 최초의 자동차 포르쉐 type64가 개발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페르디난트 포르쉐는 군용차량과 전차를 개발하다가 종전 뒤 전범으로 체포되어 20개월간 수감되었고, 1947년 출소했으나 1951년 사망했다.
페르디난트 포르쉐의 아들 페리 포르쉐는 그의 아버지가 수감되면서부터 회사를 경영하기 시작했고, ‘내가 꿈꾸던 스포츠카를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직접 만들기로 했다.’라는 말을 남기고 스포츠카 제작시장에 진입하였다. 1948년 페리 포르쉐가 설계하고 비틀의 1,131cc 공랭식 수평대향 4기통엔진을 장착한 포르쉐 356이 공개되었는데, 이 차는 이후 17년간 4세대를 거치며 7만 8천대가 생산되었고 이 모델부터 적용된 RR(Rear engine Rear drive system)은 포르쉐의 전통이 되었다. 1963년 푸랑크푸르트 모터쇼에 포르쉐356의 후속 포르쉐901이 공개되었는데, 2ℓ 공랭식 수평대향 6기통 엔진과 2+2의 4인승, 커다란 헤드램프를 장착한 모델이었다. 이때, 세자리 숫자 타이틀 중 가운데 0을 쓸 수 있는 모델은 푸조사가 독점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모델명을 변경하게 되었고 이렇게 출시된 모델명이 포르쉐911이다. 포르쉐911은 포르쉐를 대표하는 모델로 7세대에 걸쳐 현재까지도 꾸준한 인기를 모으고 있다. 1974년에는 포르쉐911 터보가 출시되었고, 1977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911의 대체자로 포르쉐928이 데뷔했으나, 911과 다른 GT카로 변경되었으며 1993년에는 포르쉐 박스터가 컨셉카로 데뷔하여 3년뒤, 출시되었다. 포르쉐 박스터는 성능 논란에도 불구하고 저렴한 가격 많은 판매량을 기록하며 90년대 중반 막대한 연구개발비에 따라 부도 위기에 빠졌던 포르쉐를 수렁에서 건져 올리는데 이바지 했다. 2002년에는 폭스바겐의 투아렉과 아우디 Q7의 설계 공정을 기반으로 한 SUV 포르쉐 카이엔을 공개하였고, 2005년에는 카이맨이 데뷔하였다.
박스터와 카이엔의 성공으로 큰 수익을 획득한 포르쉐는 2005년 10월 폭스바겐의 지분 18.5%를 취득 공시하면서 폭스바겐을 인수하기 위한 시동을 걸었다. 08년 10월에는 42.6%까지 인수하고 31.5%에 대한 콜옵션을 매입하며 ‘골리앗’을 삼키는 듯 했다. 08년 말,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며 상황이 반전 되었는데, 포르쉐가 보유한 폭스바겐에 대한 파생상품 손실과 인수과정에서 증가한 부채로 인하여 현금 유동성이 급격하게 악화되었고 독일 정부에 긴급 융자를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결국, 포르쉐는 폭스바겐에 도움을 요청하였고 2009년 7월 폭스바겐이 포르쉐AG 지분 49.9%를 인수하며 폭스바겐에 역인수되었다. 12년 7월, 폭스바겐은 포르쉐의 나머지 지분을 전부 인수하여 자회사 하였다.
포르쉐의 로고는 처음 세워진 지역의 문장을 사용해 디자인되었는데, 방패 안에 또 다른 방패가 들어 있는 모습이다. 말이 그려진 작은 방패는 슈투트가르트의 문장을 인용한 것이고, 큰 방패는 뷔르템베르크의 문장을 인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