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트로 vs. 오리지널] 03. BMW Z8 vs. 507 "계속 진화했다면? 호기심의 결과"
1997년 도쿄 모터쇼에서 BMW가 선보인 콘셉트 카 하나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Z07이라는 이름의 차는 전형적인 롱 노즈 숏 데크 스타일이 돋보이는 스포츠카였지만, 자동차 애호가들은 그 차의 모습에서 과거 BMW가 내놓았던 명차 507을 떠올렸다. 실제로 Z07이라는 이름부터 507을 응용한 것이었고, 507의 탄생 50주년을 기념하는 뜻을 담고 있었다.
명차 507 탄생 50주년을 기념해 BMW가 1997년 선보인 Z07 콘셉트 카 (출처: BMW)
콘셉트 카로 발표했지만, BMW는 1993년부터 이미 옛 507을 현대적으로 재현한 차를 개발하고 있었다. 디자인은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디자인웍스USA에서 크리스 뱅글(Chris Bangle)의 지휘로 이루어졌다. 외부 디자인은 헨릭 피스커(Henrik Fisker), 내부 디자인은 스코트 렘퍼트(Scott Rempert)가 맡았다. 디자이너들은 ‘507이 지금까지 단종되지 않고 계속 진화해 왔다면 어떤 모습일까’라는 주제를 놓고 고민했고, 그 결과가 Z07이었다.
Z07 콘셉트카에는 이미 양산차에 쓰일 주요 특징이 반영되어 있었다. Z07의 디자인을 바탕으로 수정을 거쳐 완성된 양산 모델은 1999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공개되었다. 긴 보닛과 상대적으로 짧은 트렁크는 전형적인 2인승 컨버터블의 스타일을 자아냈다. 낮고 넓은 차체는 은은하고 매끄러운 곡면이 고전적 분위기와 현대적 감각을 아우르는 모습이었다.
BMW Z8의 주요 디자인 특징은 507의 요소들을 변형하면서도 현대적 분위기가 났다 (출처: BMW)
차체 형태는 507의 분위기를 살렸지만, 차체 곡면을 거스르지 않도록 불거진 앞쪽 모서리에 투명 커버를 씌운 제논 헤드램프는 현대적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좌우로 넓은 키드니 그릴, 앞 펜더에 단 BMW 엠블럼 내장 공기 배출구, 둥근 크롬 커버를 씌운 사이드 미러 등은 원작인 507에 쓰였던 요소들을 변형해 쓴 것이었다. 가는 테일램프는 일반 전구 대신 네온등을 써서, 선명한 빛을 낼 뿐 아니라 점멸도 빨랐다. 모든 차에는 열선이 있는 유리가 달린 하드톱이 함께 제공되었다.
내부는 실내를 매끄럽게 감싸듯 디자인한 대시보드를 비롯해 많은 부분이 Z07 콘셉트 카와 거의 같았다. 네 개의 가는 막대로 이루어진 스포크가 허브에서 세 갈래로 뻗어나간 스티어링과 함께 크고 작은 네 개의 원형 계기를 대시보드 가운데에 배치한 구성이 독특했다. 물론 계기는 살짝 운전자쪽을 바라보도록 놓였다. 507에 없었던 좌석 뒤의 롤 바는 내장재와 같은 색으로 처리해 고전적 분위기를 더했다.
가는 테일램프는 일반 전구 대신 네온등을 써서 빛이 선명하고 점멸이 빨랐다 (출처: BMW)
Z8의 양산은 2000년에 시작되었지만, 생산 기간은 채 3년에 이르지 못했다. 총 생산량은 5703대였다. 과거 Z1처럼 대부분 수작업으로 만들어 생산 속도가 느리기도 했지만, 팬들의 기대만큼 압도적인 성능을 내지는 못했고 변속기가 6단 수동뿐이었던 영향도 컸다. 물론 디자인에 대한 평가는 대부분 긍정적이었고 옛 507의 분위기를 현대적으로 잘 살린 레트로 디자인의 걸작 중 하나로 꼽힌다.
Z8의 디자인에 대한 평가가 좋았던 것은 그만큼 원작인 507의 디자인이 뛰어났음을 반증하기도 한다. 507은 1955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모습을 드러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스포츠 카를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고는 해도, 당시 BMW가 만들던 차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낮고 넓으면서도 부드러우면서도 탄탄한 곡면의 차체는 세련미가 넘쳤다. 후대에 Z8이 그랬던 것처럼.
507의 아름다운 디자인은 자동차 디자인 경험이 많지 않은 알브레흐트 괴르츠에 의해 탄생했다 (출처: BMW)
공교롭게도 507을 디자인한 알브레흐트 괴르츠(Albrecht Goertz)는 자동차 디자인 분야에서 이름이 널리 알려진 사람은 아니었다. 독일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괴르츠는 유명 산업 디자이너 레이몬드 로위(Raymond Loewy)의 추천으로 완성차 업체인 스튜드베이커의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잠시 일했던 것이 자동차 업계 경력의 전부였다. 그러다가 BMW에게 미국 시장에 팔 스포츠카를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한 수입상 맥스 호프먼(Max Hoffmann)과의 인연으로 507을 디자인하게 되었다.
차 관점에서나 디자인 관점에서나 507은 당대 BMW 가운데 가장 뛰어났다. 당시만 해도 재정적으로 넉넉하지 않았던 BMW는 기술이나 디자인에 큰 투자를 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래서 대부분 차들이 최신 유행과는 거리가 있는 모습이었다. 그런 가운데 스포티하면서도 우아한 모습으로 등장한 507이 화제가 된 것은 당연했다.
BMW Z8(위)과 507은 디자인뿐 아니라 다른 공통점들도 있다 (출처: BMW)
그러나 507은 디자인 외적인 면에서는 실패했다. 높은 생산비용 때문에 값은 너무 비쌌고, 성능은 훨씬 더 싼 동급 영국 스포츠카들만 못했다. 4년 남짓 만들어진 507은 251대에 불과했고, 507의 판매 실패가 BMW를 파산 위기에 몰아넣었다는 이야기가 지금까지도 전해진다. 507의 뒤를 이은 Z8도썩 잘 팔리지 않았지만, 지금은 두 차 모두 아름다움에 희소성까지 갖춘 덕분에 수집가들에게는 무척 인기가 높다는 공통점이 있다.
류청희 칼럼리스트/jason.ch.ry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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