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외면한 ‘현대차의 약속’

미국은 언제나 외국 기업의 투자를 반긴다고 말한다. 그 투자가 고용을 창출하고, 지역 경제를 살리고,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만들어낸다면 그 환영의 폭은 더 커진다. 특히 미래 산업의 핵심으로 불리는 전기차 공장이 세워진다면, 그것은 국가 경쟁력의 상징이 된다. 그러나 현실은 말처럼 단순하지 않다.
현대차는 수년간 미국 시장에 막대한 투자를 이어왔다. 그것은 새로운 공장 건설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지역 사회와 일자리를 만들고, 공급망을 확장하며, 장기적으로 미국 경제에 뿌리내리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었다. 조지아주에 건설 중인 메타플랜트(Georgia Metaplant)는 그런 상징적인 결과물이다.
하지만 지금 현대차는 미국 정치의 한가운데에서 뜻하지 않은 역풍을 맞고 있다.
미국 정부는 그동안 현대차의 ‘모범적 투자자’로서의 노력을 인정하는 듯 보였지만, 실제 정책과 행동은 정반대의 방향으로 움직였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 예기치 않은 이민 단속, IRA 보조금 제외 등 일련의 조치들은 현대차가 보여준 신뢰의 제스처에 차가운 응답으로 돌아왔다.

현대차 정의선 회장은 미국 시장을 ‘미래 생존의 핵심 무대’로 규정했다. 국내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이고, 유럽에서는 폭스바겐·BMW·스텔란티스가 절대적인 입지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 시장은 점유율이 1%에 그친다. 현대차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결국 미국에 뿌리를 내려야 했다.
조지아 메타플랜트는 그 결심의 산물이다. 아이오닉 5와 아이오닉 9, 그리고 향후 하이브리드 모델까지 생산할 예정인 이 공장은 미국 내에서 가장 진보된 자동차 생산시설 중 하나로 평가된다. 완공 후에는 약 4만 명의 직접·간접 일자리를 창출하고, 배터리 및 부품 산업 전반에 연쇄적인 성장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이 공장을 포함한 현대차의 미국 내 누적 투자 규모는 260억 달러에 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싱턴의 반응은 냉담하다. 트럼프 행정부가 부활시킨 25% 관세는 한국산 자동차에도 예외 없이 적용됐다. 애초에 한미 간 합의를 통해 15%로 낮추기로 했지만, 시행 시점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완화를 조건으로 더 많은 미국 내 직접 투자를 요구했다. 현대차는 즉각 반응했다. 멕시코 공장에서 생산하던 SUV 일부를 앨라배마 공장으로 옮기고, 미국산 부품 조달 비율을 높였다. 현지 협력업체 네트워크를 새로 구축하면서 미국 제조업 생태계와의 연계를 강화했다. 그러나 결과는 기대와 달랐다.

2025년 9월 4일, 조지아 메타플랜트 공장에서는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이 대규모 단속을 벌였고, 현장에서 300명이 넘는 한국인 기술자들이 구금되었다. 대부분은 배터리 설비 구축과 생산라인 기술이전을 위해 파견된 엔지니어였다.
이 사건은 미국의 강경 이민정책이 동맹국 기업의 전략적 현장까지 영향을 미친 사례로 남았다. 현지 언론조차 “미국의 중요한 동맹국을 향한 불필요한 모욕”이라고 비판했다. 한국 정부와 외교 채널이 즉각 항의했지만, 이미 공장은 가동 차질을 빚고 있었다.
이 단속은 트럼프 행정부가 내세운 ‘불법 이민 근절’의 상징적 사건으로 이용됐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단속 대상에는 합법적인 비즈니스 비자로 입국한 기술자들이 포함되어 있었고, 그들은 공장의 시운전과 장비 세팅을 위해 일시적으로 체류하던 인력들이었다.
결국 메타플랜트의 가동은 지연됐고, LG에너지솔루션과의 배터리 합작 공장 일정에도 영향을 미쳤다. 정의선 회장은 이후 워싱턴을 다시 찾아 관계 복원을 시도했지만, 분위기는 냉담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대차의 투자 발표를 두고 “관세 정책이 성공적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자찬했으나, 불과 며칠 뒤 단속이 벌어졌다. 기업의 성의가 정치적 이벤트로 이용된 셈이었다.

현대차의 미국 내 어려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2년, 바이든 행정부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과시키면서 전기차 세제 혜택을 미국 내 조립 차량으로 제한했을 때, 현대차와 기아는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아이오닉 5와 EV6는 훌륭한 평가를 받았지만, 수입차라는 이유로 세제 혜택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현대차는 곧바로 대응에 나섰다. 리스 중심의 판매 구조를 구축해 소비자들이 간접적으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조정했다. 하지만 이 방식은 장기적인 브랜드 가치와 수익성 측면에서 불리하다. 그럼에도 현대차는 미국 시장을 포기하지 않았다. 전체 영업이익의 절반 이상이 미국에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의 글로벌 성장 전략은 미국 소비자와의 관계 위에서 유지된다. 그러나 미국 정부의 정책은 이 관계를 지속적으로 흔들고 있다. 보조금, 관세, 규제 그 어느 것도 안정적이지 않다. 미국은 오랜 동맹국에 명확한 신호를 주기보다 정치적 상황에 따라 입장을 바꾸고 있다.

자동차 산업은 기술 경쟁과 품질, 생산 효율성의 싸움이다. 하지만 글로벌 경제 무대에서는 언제나 정치가 그 위에 군림한다. 현대차의 사례는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조지아 메타플랜트 이민단속 사태는 정치적 메시지였다. ‘경제 동맹국’으로 불리는 한국에조차 예외는 없다는 일방적인 통보였다. 현대차의 투자와 고용 창출이 워싱턴에서는 정치적 협상 카드로 변질되고 있었다.
한국 정부 내부에서도 우려가 나왔다. 일부 관계자는 현대차의 선제적 투자 발표가 오히려 한국의 무역 협상력을 약화시킨다고 지적했다. 이미 ‘성과’로 포장된 투자가 협상의 여지를 줄이고, 미국 정부가 추가적인 요구를 제시할 명분을 주었다는 것이다.
한편 메타플랜트 건설 과정에서 발생한 산업재해도 논란을 키웠다. 최근 3년간 최소 세 명의 근로자가 사망했고, 현장 안전 관리 체계의 미비가 지적됐다. 이는 현대차의 ‘책임 있는 투자자’ 이미지에도 타격을 주었다.

현대차는 지금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첫 번째 선택은 미국 중심 전략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다. 이미 수십억 달러가 투입된 만큼, 중도 철회는 불가능에 가깝다. 추가 투자와 고용 창출을 지속하면서 미국 정부와의 관계 회복을 노리는 방식이다. 장기적으로는 정책 리스크를 상쇄할 수 있을지 불확실하지만, 시장의 규모와 상징성은 여전히 크다.
두 번째는 전략의 분산이다. 멕시코·인도·유럽 등으로 일부 생산을 분산하고, 미국 내 설비를 조립 중심으로 재편해 리스크를 줄이는 방식이다. 단기간의 이익을 희생하더라도 글로벌 밸류체인의 균형을 맞추려는 시도다.
세 번째는 외교적 역량 강화다. 현대차의 미국 전략은 이제 외교의 영역에 들어섰다. 무역, 관세, 이민, 환경 정책까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기업의 기술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사안이다. 한국 정부와의 공조를 통해 기업의 입장을 정책 테이블에 반영시킬 제도적 기반이 필요하다.
마지막은 현지화의 강화다. 공장 운영 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와의 관계, 노동조합, 지방정부와의 신뢰 구축이 중요해졌다. 미국 사회의 규범과 제도를 세밀하게 이해하고, 법적·행정적 리스크를 사전에 관리하는 것이 장기적 안정의 핵심이 된다.

현대차의 경영진은 말한다. “미국 시장은 절대 포기할 수 없다.” 그 말 속에는 이익 이상의 감정이 담겨 있다. 그것은 파트너십에 대한 신념이다.
그러나 신념은 언제나 상호적이어야 한다. 미국이 진정으로 동맹국과 함께 미래의 산업을 키워가길 원한다면, 현대차의 약속에 응답해야 한다. 260억 달러의 투자와 수만 개의 일자리 창출, 그리고 기술 이전의 진정성은 일방적인 거래가 아니라 공동의 번영을 위한 약속이었다.
지금 미국이 해야 할 일은, 그 약속에 책임 있게 답하는 것이다. 그것이 세계 산업 질서의 신뢰를 지키는 최소한의 예의이며, 한때 자유무역을 믿었던 미국이 잊고 있는 마지막 정의일지도 모른다.
글 / 원선웅 (글로벌오토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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